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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리뷰

책리뷰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를 허무는 소설<아몬드> 정보,줄거리,서평

by 버닝스터디 2023. 3.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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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몬드

데미안과 연결되는 소설 아몬드 정보

헤르만 헤세의 소설 데미안의 주인공 싱클레어는 자신이 살아가는 세상이 실은 두 세계로 나뉘어 있음을 그가 발견한 첫 번째 세계는 이른바 밝은 세계로서 즉 사회가 정상이라고 규정한 다수의 세계를 가리킨다. 이를테면 돈 버는 능력을 최고의 미덕으로 여기며 이혼을 인생의 오점으로 간주하는 세계 즉 사회가 못 박은 테두리를 좀처럼 벗어나지 않으려는 삶이라 할 수 있다. 반면 싱클레어가 목격한 또 다른 세계는 이른바 어두운 세계 즉 사회가 비정상으로 규정한 세계이자 충동과 본능의 세계이다. 쉽게 말해 이는 곧 사회적으로 권장되지 않는 소수자들의 세계로서 사회가 만든 규칙에 맹목적으로 복종하지 않는 모험가들의 세계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도대체 이 두 세계를 구분하는 주체는 대체 무엇이 한 세계는 밝은 세계로 또 한 세계는 어두운 세계로 규정하는 것일까? 알밖으로 나와 세상을 바라보는 자유를 비교하며 이런 정상과 비정상을 가르는 우리 주변의 일상적 폭력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책이 바로 아몬드다. 아몬드는 소설가이자 영화감독인 손원평 님의 작품으로 2017년에 발표되었다. 80만 독자가 사랑하고 열렬한 지원을 받은 장편소설로 믿고 읽는 작가로 자리매김을 하게 되며 최근 타인의 집을 출간하였다.

책의 줄거리

소설의 주인공은 선윤재라는 이름의 어린아이이다. 소위 아몬드라 불리는 편도체가 선천적으로 매우 작게 태어난 윤재는 감정 정보를 처리하는 기능이 현저히 떨어진다. 따라서 윤재는 무서운 것을 봐도 공포를 느끼지 못하며 남들의 불행을 보아도 전혀 공감하지 못하는 이른바 알렉시티미아 감정표현불능증 장애를 갖고 살아가게 된다. 다시 말해 윤재는 싱클레어가 발견한 어두운 세계 즉 사회가 비정상으로 규정한 세계에 속한 인물이다. 그렇다 보니 윤재는 늘 어머니의 걱정거리였다. 남들과 다르다는 것을 들키는 순간 윤재가 떠안게 될 삶의 짐을 어머니는 그 누구보다 잘 알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머니는 매일마다 윤재에게 상황별로 적절한 말을 주입식으로 암기시킨다. 윤재이 어머니는 어떻게든 윤재를 정상세계로 편입시키기 위해 갖은 애를 쓴 것이다. 크리스마스전날이다. 이때 자신의 신세를 비관하던 한 남자가 거리에서 윤재의 엄마에게 별안간 흉기들 들어 헤치려 하는데 그 모습을 그저 묵묵히 아들은 바라볼 뿐이었다. 이로써 세상에 홀로 남겨지게 된다. 이제 윤재는 정상 세계의 질서로부터 해방되어 자기 자신의 규칙과 만남을 통해 살 수 있게 된 것이다. 하지만 학교로 돌아간 그 아이를 보는 시선은 그리 곱지 않았다. 이 사건을 계기로 윤재를 이상한 아이로 여기며 멀리하게 된다. 이것처럼 정상 세계는 끝없이 비정상 세계를 구축함으로써 자신들의 세계를 공고하게 다진다. 윤재의 할머니는 윤재에게 말하길 윤재가 특별해서 그런 나 보다며 사람들은 원래 남과 다른 걸 배기질 못한다고 한다. 이렇게 남과 다르다는 차이는 차별의 마땅한 이유로 자리 잡게 된다. 하지만 윤재는 정상세계로 규정된 그곳에서 쏟아지는 온갖 비아냥에도 아무런 느낌을 받지 못한다. 이를 통해 짐작할 수 있는 성장의 또 다른 요소는 세상에 대한 초연함이다. 예를 들면 정상세계는 우리에게 이렇게 살아야 한다 저렇게 살아야 한다며 끝없이 주문을 한다. 만약 윤재가 그에 굴복하여 세상이 원하는 바에 적당히 맞춰 살아갔다면 보다 평화로운 삶을 살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곧 자기 자신으로부터 멀어지는 삶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윤재의 장애는 결국 소위말하는 정상 세계의 규칙에 복정 하지 않는 성장의 길목에 들어설 수 있었다. 얼마 후 윤재 앞에 새로운 인물 두 명이 등장한다. 첫 번째는 전학 온 곤이는 어릴 적 부모님의 실수로 미아가 된 인물이다. 누가 봐도 불량스러운 아이로 처음에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윤재를 괴롭히지만 감정을 못 느끼는 이 아이에게 점점 호감을 느끼며 둘은 기묘한 우정을 쌓는 사이가 된다. 다른 인물 하나는 도라라는 여자아이다. 윤재는 돌아와 마주칠 때마다 이전에 느끼지 못했던 심장의 쿵쾅거림을 경험하는 등 새로운 기분을 경험한다. 이로써 윤재는 곤이와 도라를 통해 세상을 점차 입체적으로 체험한다. 시간이 흘러 곤이는 자기를 비정상으로만 간주하는 세상에 상처받고 거리에 삶을 살기로 하는데 그 과정에서 곤이를 구하려던 윤재는 일련의 사건에 휘말리게 되고 병원에 입원하게 된다. 여기서 깨어난 윤재를 기다리는 건 윤재의 엄마였다. 기적적으로 깨어난 윤재는 눈물을 흘리며 소설은 막을 내린다.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를 허무는 내용에 대한 서평

어머니의 교육방식에 대해 생각해보고자 한다. 데미안에서 나온 세계와 비교해 볼 때 정상과 비정상이 무엇일까? 사실 이 둘 사이에는 엄청난 위계질서가 존재한다. 결론은 비정상은 절대 정상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비정상의 범위를 설정하는 권력 자체를 정상 세계가 쥐고 있기 때문이다. 가령 역사적으로 아주 오랫동안 비정상이라 여겨진 성소수자들을 비정상이라고 박해한 세력은 다수의 이성애자들이 살아가는 세계 즉 정상세계다. 정상 세계는 진실로 정상적이라는 당위성이 생긴다. 이런 관점에서 정상인이란 정상인이기 때문에 정상인이게 아니라 비정상인이 아니기 때문에 정상인 일 수 있다는 논리가 성립되는 것이다. 따라서 윤재를 비정상으로 규정하는 권력은 감정을 느끼는 것만을 멀쩡한 것이라 여기는 정상세계로부터 나온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윤재엄마가 윤재를 교육시키는 것은 겉으로는 어머니의 따뜻한 사랑처럼 보이지만 실은 있는 그대로의 윤재를 인정하지 못하는 정상세계의 한계인 것이다. 물론 세상의 모든 부모는 자기 자녀가 정상세계에서 살아가길 바란다는 점에서 교육하는 엄마는 무척이나 현실적인 이야기다. 하지만 윤재가 정상적인 성인으로 자라나기 위해 이런 식으로 교육받고 자란다면 결국 정상세계에 완전히 포획되어 스스로 멀어지는 삶을 살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이런 면에서는 스스로 살아남기 위해서는 엄마와 헤어져야 한다고 본다. 진짜로 헤어지고 난 후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이 아이를 오롯이 바라보는 곤이와 가슴을 뛰게 만드는 도라와의 만남은 다시 세상의 편견으로 만든 정상세계와 비정상세계를 뜻한다. 어두운 세계로 여겨지는 곤이를 보는 윤재는 그의 내면에 깃든 밝은 세계를 발견한다. 반면 밝은 아이로 여겨지는 도라는 그 내면 속 고통과 아픔이 자리하고 있음을 알아보게 된다. 보통의 눈이 아닌 윤재의 시선으로 규정된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를 허물게 된다. 진정한 어른이 되기 위해서는 정상과 비정상을 뛰어넘는 자유가 필요하다. 마지막 장면에서 엄마를 만나 눈물을 흘린 것 감정을 느끼게 된 윤재를 나타낸다. 하지만 이것이 진정 해피엔딩인지는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 보통의 성장 소설의 마무리는 주인공의 성장이 완성되었거나 성장이 좌절되었더라도 자신만의 방향을 확립하여 나감을 의미한다. 하지만 이 소설은 감정을 못 느끼는 윤재를 긍정하지 않는 결말이기 때문이다. 사회가 규정한 비정상의 범주에서 감정을 느끼는 것만이 정상이라는 사회적 통념에 그저 윤재가 굴복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그래서 눈물 한 방울을 흘린 것에 감동을 받기보다는 그 아이 자체로 윤재를 긍정해 주는 사람들과 조화로운 삶을 살아가는 것을 응원해 줘야 하는 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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